천혜의 수려한 경관 지장암

북한산 국립공원 해발 250m에 위치한 신성하고 소중한 자연유산

       

지장암 창건 과 유래

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

소재지 :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28번길 269

사찰명 : 지장암(地藏庵)

 

1) 불교(佛敎)와 수석(樹石) 그리고 암석숭배사상(岩石崇拜思想)

자연적인 바위를 신격화(神格化)하여 숭앙(崇仰)하는 행위를 암석숭배(岩石崇拜)라 한다. 또는암석신앙(岩石信仰)이라 한다. 이러한 것은 바위나 수석에 관련된 일종의 생명력과 바위가 직접 주술적 힘을 지닌 영물(靈物)로 믿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암석신앙(岩石信仰)은 고인돌, 선돌등 거석(巨石) 숭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자연석에 미륵불이나 마애불을 새겨 기자(祈子)를 빌기도 하고 가정의 안녕과 과거급제등 속신(俗信)들도 암석숭배로 보았다.

 

자연 바위는 산신령(山神靈)이 되기도 하고 부처로 바뀌어 신통력의 소유자로서 사람처럼 소망이 있어 움직이는 인격적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았다.

 

바위의 불변하는 영속성과 견고성, 이끼로 치장된 오랜 생명력 등이 거대한 힘에 부치는 신앙을 바닥에 두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점차 암석신앙으로 발전하여, 여기 이곳 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의 내력을 기록하여 둔다.

 

이러한 거석문화(巨石文化)는 암석설화(岩石說話)를 만들어 내었으니 금강산(金剛山)이 만들어 질 때 울산에 이던 한 바위가 참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설악산(雪嶽山)에 자리 잡은 설화, 자식(아들) 낳게 빈다는 기자암(奇字岩), 장군암, 상사암, 역사적인 바위, 영웅 출현등 형상석을 모티브(motive)로 설화가 많이 생겨났다.

 

2)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

자연의 바위 그 자체를 신격화(神格化)하여 숭앙(崇仰)하는 것을 암석신앙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암석숭배는 먼 옛날 석기시대의 고인돌이나 선돌 등 이른바 거석숭앙(巨石崇仰)에서 보듯 바위의 불변성과 영속성, 견고성, 생명력 등에 부치는 신앙이 기저에 깔려져 있다.

 

인간의 의지나 간절한 소망을 암석(岩石)을 통하여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불변의 힘을 빌어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암석신앙은 불교(佛敎)와 연관지어 발전을 모색하였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을 꼽을 수 있다.

 

금강산에 팔만구 암자가 있었다. 하나 그 많은 암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본뜻은 많은 일만이천봉 봉우리들을 모두 부처님으로 보고 명실상부 불교의 성지(聖地)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불교 거석신앙은 우리나라 신라 왕자 김교각(金喬覺) (705-803)24세때 중국 구화산(九華山)으로 출가하여 바위 틈에 있는 흰흙과 쌀을 섞어 삶아 먹으며 관법(觀法)을 익혔다. 그의 고행을 본 산 아래 백성들은 큰 절을 지어주고 780년경 장공암(張公庵)이 화성사() 현판을 붙였다. 물론 이때는 소문을 듣고 신라 사람들도 많이 찾아 왔다. 한 각로(閣老) 민공(閔公)이 있었는데. 수시로 재를 베풀어 선념(善念)을 다졌으니 하루는 교각스님이 가사(嘉裟)로 덮을 만한 땅을 빌려달라고 하자, 민공이 승낙 하였다. 교각스님은 이 가사를 펼쳐 그 거대하 구봉(九峰)을 모두 덮어 버리니 민공은 놀라 구봉 모두를 희사하였다. 그리고 민공과 그의 아들 도명(道明)을 제자로 삼았다.

 

803년 여름 대중과 작별하고 항아리속에 들어가 가부좌하고 죽었는데 3년후에도 살아 있는 형상으로 있었다.

 

그 자리에 탑을 세웠는데 최근에 탑을 해체 하였는바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유체가 보존되어 있으니 중국인들은 그를 육신보살로 추앙하여 그가 머무르던 곳에 육신전(肉身殿)을 세우고 지장왕궁(地藏王宮)이라 이름하고 중국인들은 그를 지장보살(地藏菩薩)이라 하며 우리나라는 등신불(等身佛)이라 칭한다.

 

여기 육도(六道)의 중생을 구원하는 대비보살(大悲菩薩)이 계시니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육도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자신의 성불(成佛)을 포기하였으니 악도(惡道)에 떨어져 헤매는 모든 중생이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치 않을 것이며, 정해진 업(業)을 면하기 어렵다 하였으나 지장보살에 귀의하여 해탈을 구하면악도를 벗는다 하였으며, 부처가 없는 세상에서 모든 중생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것보다 더큰 특징은 자비, 용서로 중생을 지옥의 고통을 받지 않게 지옥문을 굳게 지켜 중생들을 천상극락으로 인도 한다는 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인 것이다.

 

0 ) 육도(六道) : 중생이선악의 업인(業因)에 따라 윤회하여 이르는 세계이니 곧 육계(六界) 또는 육취(六趣)라 하며 지장 보살을 육도능화(六道能化)라 한다.

 

육도는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이와 같이 영험한 바위가 바로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망월사(望月寺)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곳을 출입하는 스님이나 신도들의 숭앙의 대상 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임진왜란(1592)시 묘향산 보현사의 의승(義僧) 휴정()으로부터 선조(宣祖) 임금이 준 육도선교도총섭(六道禪敎都摠攝)을 물려받은 제자 유정(惟政) 스님께서 평양성에서 패퇴하여 도망가는 왜적을 쫓아 이곳 도봉산(道峯山)과 수락산(水落山)에 승군을 숨겨놓고 노원평(盧原坪)에 집결하여 있는 왜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니 이 전쟁을 노원평전투(盧原坪戰鬪), 또는 마들평전투라 부른다.

 

미루어 짐작하면 당시 유정(惟政) 대사를 비롯한 스님과 많은 의승군이 이곳 지장암에서 승전의 기도를 드렸을 터이며, 망월사에 출입하던 해호(海浩)스님, 혜거국사(惠炬國師), 동계(東溪), 막월(막月), 완송(琓松), 회광(晦光) 등여러 고승들께서 이곳을 참배 하였을 것이다.

 

90512월 신라 경순왕은 고려에 투항하였다. 이때 신라의 지식인들은 갈곳을 잃고 우왕자왕하였으며 왕자들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스님이 되었다.

 

90510월 큰아들 마의태자는 개골산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연명하였고 둘째 아들 김범은 중국 구화산에 들어가 종단을 만들었으니 중국에서는 지금도 4대 종단에 들어간다. 나머지 왕자들은 국내 깊은 산에 들어가 각자 승려생활에 들었다. 그중 한분이 원도봉산에 들어 승려생활을 하였다고 전한다.

(발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2번과 7,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지금 우리의 전통 거석신앙이 사라져가는 현재, 지장암을 지키려는 많은 신도와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지장암 보존운동에 동참하는바 문화재로 지정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앙망합니다.

 

저 임병규 (향토사학자) 2014. 3

 

1. 남양주 문화재 (풍양 문화시리즈) 저자 : 임병규

2. 남양주 땅이름 (풍양 문화시리즈) 저자 : 임병규, 윤종일

3. 남양주 독립운동가 (풍양 문화시리즈) 저자: 임병규,윤종일, 민경조, 황준연

4. 남양주 불화(풍양 문화시리즈) 저자 : 임병규, 윤종일, 민경조, 황준연, 나효열

5. 남양주 역사기행 (다산 문화시리즈) 저자 : 임병규, 윤종일, 민경조

6.열수와 마현 (다산 문화시리즈) 저자 : 임병규, 윤종일

 

지장암 소개 및 특징

1)지장암 소개

지장암은 자연바위를 신격화하여 암석신앙으로서 자연물을 숭배하는 것은 과거 고인돌, 거석신앙등으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우리선조들이 중시했던 애미니즘(거석숭배) 숭배에 근간이 된 장소로 주변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이와 관련하여 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 또한 암석신앙, 거석신앙으로서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장암은 기도도량이자 역사에 남을 자연유산으로 후손에 남겨줄 가치있는 기도터이다.

 

오래된 기도터를 196833일 창건하여 한때는 의정부시 관할 관등록 사찰이었으며 현재는 세계 유일 비구니 종단 보문종 소속이며 1985년도 12월9일 입산

지행스님 안서정() / 구 안경자(安慶子) 구족계 : 2005. 4.25 (직지사)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 2002년 8월 22일

사회복지사 자격증 (제1-41981호) 2002년 10월15일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 2002년 8월 22일

2)특징 및 규모

- 천혜의 수려한 경관을 나타내는 북한산 국립공원 해발 250m에 위치한 지장암(地藏岩)은 예로부터 영험한 바위로 신성시 여겨지고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아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각하지 못하게끔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관리하고 있음

- 지장암 3대가치 

   역사적 가치 : 옛날부터 사람들이 기도하였던 치성처임

   경관적 가치 : 북한산 국립공원 (원도봉산)이 위치하고 있어 주변환경이 수려함

   예술적 가치 :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으로 형성된 명석임

- 규모 : 33m x 25m

- 구조 : 자연석 (3단구성)

 

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은 인간이 조각하지 않은 자연 풍화작용으로 3단 구성의 자연석 (33m x 25m)의 불교의 육도 천(인간(人間아수라(阿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을 갖춘 살아 있는 영험한 바위(암석암)이며 정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7mx5m)는 거북모양을 하고 있고 거북의 머리는 뱀의 모양이다. 거북이 상징하는 것은 생명장수 및 관운 그리고 부귀를 뜻하고 뱀의 머리는 기일을 앞당기기 때문에 소원 성취를 빨리 가져올 수 있음을 뜻하는 기도도량이다.

 

3)지장암 기도터 (추측)

지장암(地藏庵)의 지장암(地藏岩)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바위로 극락세계 서방정토 구품연화대에 상품상생하는 영가중 사바에 미련이 있어서 뒤돌아서면 동쪽을 바라보는지장암(地藏岩)이 영가와 하나되어 다시 극락세계 서방정토로 갈 수 있는 영험한 기도터입니다. (중요하것은 각자 근기와 정성스러운 마음에 따라 육도윤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참회 및 소원 성취 기도법

살아 숨쉬는 지장암(地藏岩) 기도터에서는 입구에서 헛기침(남의 집 방문시 인기척을 하듯)을 하고 우측(살아 계시는분)과 좌측(돌아가신분) 양쪽에 촛불을 키고 "몰라서 저지른죄 용서하시옵고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참회 기도 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근(나도 알고있다 한번. 소원성취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번.)하고 법당으로 옮겨 지혜를 밝히고 산신각에 올라가서 소원을 빕니다.

1985년도 이전

종무소

종무소

대불보전

산신각

법당

겨울 대불보전

겨울 산신각

지장암(地藏岩)

지장암(地藏岩)

방생 단체사진

2001년 5월 상랑식

2001년 5월 상랑식

2001년 5월 상랑식

부처님 오신날

지장암 사찰영상

지장암(기도터)

지장암 초입

종무소

산신각

대불보전

지장암 행사 및 일정

행사 및 일정은 날씨 또는 상황에 따라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 될 수 있사오니 오시기전에 별도 문의 바랍니다.
자동이체 : 국민은행 267301-04-011905 (지장암) / 국민은행 544901-04-035523 (돈계암)

<월간 행사 및 일정>
행사 기간
신중기도 매월 첫번째 일요일
지장기도 매월 세번째 일요일
산신기도 매월 음력 3일
인등기도 매월 음력 15일
<연간 행사 및 일정>
행사 기간 비고
구정차례 음력 1월1일 시집 / 친정 상차림을 따로봄
입춘기도
방생 음력 1월 마지막 일요일 망월사역 오전9시 출발
산신기도 음력 2월15 - 17일 3일 산신기도
부처님오신날 음력 4월8일 정월부터 접수
칠석기도 음력 7월7일
백중기도 음력 7월7일 시집 / 친정 상차림을 따로봄
추석차례 음력 8월 15일 시집 / 친정 상차림을 따로봄
방생 음력 8월 마지막 일요일 망월사역 오전9시 출발
추계 백일기도 음력 9월1일
동지기도

지장암 수해복구 개요

1)지장암 수해복구 개요

지난 9885일부터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전국적으로 234명의 인명피해와 약 1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 되었습니다. 특히 의정부 지역에는 4일동안 741mm의 집중호우가 쏟아짐으으로 인해 피해가 많았던 지역 중 하나입니다.

의정부 관할 북한산 국립공원내에 위치한 지장사(지장암) 사찰의 경우 지난번 집중호우로 인해 법당 사찰 건물 일체가 완파 또는 반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축대, 진입로 계단이 완파되었으며 2명이 사망하는 등 심각한 인명 및 재산상 피해를 입었고 돌아가신 이들에 대한 기도를 지장사(지장암) 별도로 진행 하였습니다.수해 복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장사(지장암)에 올라오다가 일주문에서 돌아가신 한 분이 있습니다.

현행 자연재해 대책법에서는 이러한 자연재해로 인해 국민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방재 책임자 (시장, 군수, 구청장등)에게 복구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동법(53)에 복구 비용 또한 방재 책임자의 부담으로 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동법 제 58)

 

지장사(지장암)는 수해복구에 누락되었다는 북서관 4110-48를 국립공원 관리공단 북한산 관리사무소 서부지소로부터 1999122일 받았으며 첨부로 국립공원 관리공단 북한산 관리사무소 서부지소에서 의정부시에 보낸 공문사본 1(의정부시장 수신으로 제목 : 호우피해 복구공사 요청)

 

20024월 김명자 환경부 장관과 전화로 자재운반 삭도가 철거되면 진입로와 축대 설치, 하천 상류 정비를 약속했으며 이에 따른 환경부와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장사(지장암) 주지 지행관련 관계기관 합의서를 지장사(지장암)에 갖고 있습니다. (장관이 바뀌면 정책은 바꿔질수 있지만 민원은 바뀔 수 없습니다.)

 

2009년 이만의 환경부장관 당시 정연만 국장님 검토하에 300m200m만 진입로 공사를 했으나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 관리사무소 서부지소 지행스님과 함께 최종 공사 결정을 원효사에 짐을 올리는 경운기는 최소 올라갈 수 있도록 하자고 현장에서 협의하고 국립공원관리 공단 북한산 관리사무소 서부지소에 도착 후 국립공원 관리공단 북한산 관리사무소 직원 박용우등등이 환경부 주무관에게 공사를 못한다고 했으며 환경부 마수윤 주무관은 직무유기라고 하면서 지행스님은 사찰에 올라가라고 하여 올라왔습니다. (수혜복구를 위해 대기업에서 진입로 도로공사하여 법당을 짓고 내려오면서 진입로 도로를 원상복귀 해 주겠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 관리사무소 서부지소 당시 박기연 과장과 의논했으나 거절 당했음.)

 

공사 중 문제를 제시했을 때 북한산 관리사무소 직원 박용우는 안이하게 일처리를 진행하였고 민원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고의적으로 진입로 공사를 진행 하였습니다. 그 과정 도면(자재운반 삭도와 1999년도 진입로 입구 수해 복구축대 기준 진입로 설계 약속)과 공사가 문제점이 있어 유영숙 환경부 장관을 2번 만나 진입로 현황 측량이 이루어 졌는데 측량결과 진입로 도면이 산쪽으로 올라가 있어서 1번 다리 입구 끝 기초공사를 포크레인 뿌레카로 1.5m 산기슭의 돌을 깨서 기초 공사가 산으로 올라 갔으며 진입로 초입 60m 지점은1999년 수해복구 축대를 쌓은 것을 허물고 산쪽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진입로 90m 지점은 1999년 수해복구 위치에서 1m 산쪽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그 지점의 설계도면은 현재 수해 복구 된 도로보다 3m 산쪽으로 올라가게 설계 되어 있습니다. 더욱더 위험을 초래하는 2번째 다리는 계곡의 흐름을 무관하고 산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서부 관리소 박용우 담당이 지장사(지장암) 지행스님께 자재운반로 삭도 허가를 위해 4번 설계도면 변경 신청한 도면을 달라고 해서 도면을 넘겨 주었더니 측량도 하지않고 대충 자재운반로 도면을 짜깁기해서 했기 때문에 도면이 전체적으로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나 소승은 생각합니다.

 

2)수해복구 문제점

지장암 진입로 일부 구간이 급경사로 이루어져서 현재 많은 신도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현실이며 또한 내려갈 때 급경사는 미끄러운 돌로 되어 있어서 신도 및 등산객이 넘어져서 위험하고 신도가 팔목이 부러져서 생업인 장사를 6개월간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또한 공양주가 외출하려다 넘어져서 입안이 터지고 타박상을 입는 등 본인 역시 미끄러져서 승복이 찢어지는등 위험하기 그지없는 진입로입니다. (인력공사 사람이 한번 짐 올리고 나면 돈 안받아도 된다고 그냥 갑니다.) 이 곳을 올라오는 탐방객들도 어떻게 이렇게 공사를 할 수 있느냐고 기가막혀 합니다.

 

수해 당시 피해 현황은 산사태 원인으로 집중호우와 간접원인으로는 지장암 위 산사태로 되어있습니다. 지장암에서 200m 올라가면 정상에 나무가 쓰러져 낙엽이 쌓여서 호수를 이루었고 순간 호수가 터지면서 4일간 계속된 호우로 큰 바위와 흙이 거대한 암반과 분리된 상태에서 나무가 쓰러지면서 거대한 돌과 함께 법당을 쓰러뜨리고 넓은 계곡을 만들었습니다.

 

TV,신문, 매스컴은 의정부 수해 상황을 집중보도 하므로 많은 ARS모금을 했습니다. 수해복구비로 국립공원 관리공단 북한산 서부관리 서부지소에 전달이 되었을 것이고 이 수해복구 비용중 일부는 이주단지 옮기는데 사용 되었으며 화장실(미준공을 준공 처리한)공사 등 수해복구와 관련되지 않은 사업을 했으나 의정부의 민원이 해결되어서(이주단지 조성) 지장암 수해복구를 못해 준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9년 수해복구비를 도면과 공사비의 밀접한 관계를 무시하고 잘못된 도면을 기준하에 수해복구 예산이 반영된 것에 대해 검토하여 다시는 이런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펴낸곳 : 사찰 문화연구원 출판국

지은이 : 사찰 문화 연구원 138페이지 삼각산 도선사 북한산 국립공원 내 삼각산 도선사는 1912년 6월 큰 홍수, 수해로인해 서멸당 및 승려가 떠내려 갔고 주지를 비롯한 7인의 목숨을 잃었으나 지금은 대사찰이 되었음.

 

3)수해복구 관련 진정서

본 지장암은 북한산국리공원 내 해발 250m에 자리한 사찰로 199886일 수해로 법당. 사찰건물 일체가 완파 또는 반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축대 , 진입로(300m) 계단이 완파되었으며 2명이 사망는 등 심각한 인명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수해복구에 누락되어 수차례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건의하여 2009년도 수해복구진입로 일부공사(진입로 300m 200m)를 했으나 현장 측량결과 설계도면이 산으로 올라가 잘못된 도면으로 진입로 초입 기초공사는 포크레인 뿌렛카로 산쪽 1.5m 올라가 시공했으므로 하천폭이 8m 넓어지고 지장사(지장암) 도로폭이 좁아져서 충분히 차량이 올라 갈 수 있는 진입로를 고의적으로 다리는 나무다리로 하고 또한 1998년 수해복구한 초입 진입로 축대를 부수고 잘못된 설계도면 기준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재축대 시공을 했으므로 도로폭이 좁혀 공사하였으며 경사 역시 급경사, 완경사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공사하지 않았으므로 사고가 잦은 지장암 진입로가 되었습니다. 이에 수해복구 진입로 시공을 진정 드립니다.

도면이 잘못된 이유 :공사전 협의로 1998년 지장압 진입로 초입 하천수해복구 된 것을 기준으로 하여 경운기라도 올라 갈 수 있게 협의 결정했으나 도면이 산으로 올라감.

 

< 수해전 >

98년 8월6일 새벽4시 수해이전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전법 기도도량 삼천등불사 원만성취 후 수해당함

< 수해 전후비교 >

수해전후가 명확히 드러날정도로 법당의 훼손이 심했고 폐허가 되었다.

< 수해 항공사진 >

수해복구 및 정비상황을 항공사진으로 촬영

< 수해 당시사진 >

수해 복구에 누락되어 정부 도움이 없어 지장암 사찰에서 개인적으로 계곡을 정비

< 수해 복구사진 >

 

<수해 복구 공문 관련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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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암 불사현장

< 삭도설치 현장 (불사 자재운반 삭도현장) >

< 법당 불사현장 >

< 산신각 불사현장 >

< 종무소 불사현장 >

찾아오시는길

 

오시는길 본부에 대한 주소, 연락처, 교통편을 나타낸 표
주소지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28번길 269 지장암
연락처 Tel.031-872-9614
교통편 지하철 1호선 망월사 3번 출구로 나오신후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이동 (차량으로 지장암 입구까지 이동가능)